
뉴홉
Another New Hope
2026. 7. 31. - 9. 19.
백현주 여다함 이창훈 임흥순 정정주 차재민
걱정이나 근심이 없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 1
주시영(아트센터예술의시간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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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처럼 웅장하고 모든 최신 시설을 갖춘 마포아파트의 준공식에 임하여 본인은 서울의 발전과 이 나라 건축업계의 전도를 중심으로 경하하여 마지않습니다. 본래 5.16 혁명은 우리 한국 국민도 선진국의 국민처럼 잘살아보겠다는 데 그 궁극적인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루라도 속히 빈곤으로부터 벗어나서 잘 입고 잘 먹고 좋은 집에서 잘 살기 위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였고 현재 성공리에 진행 중에 있는 것입니다. (…) 이제까지 우리나라 의식주 생활은 너무나도 비경제적이고 비합리적인 면이 많았음은 세인이 주지하는 바입니다. (…)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각광을 받고 건립된 본 아파트가 장차 입주자들의 낙원을 이룸으로써 혁명 한국의 한 상징이 되기를 빌어 마지않으며, 끝으로 (…) 이 자리에 입주할 문화시민 여러분의 행복을 길이 빌어 마지않습니다.”
마포주공아파트 1차 준공식(1962년)에서 대독 된 박정희의 치사(致辭) 중 일부다.2마포주공아파트는 봉건적 농경사회를 벗어나는 현대적 사회로의 전환을 의미했고, 과거를 등진 새로운 사회로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당시 대한주택공사의 표어 ‘새 시대, 새 마음, 새출발, 새로운 주거문화 창조’는 ‘새마을’ 진입을 위한 과거로부터의 탈피, 이른바 껍질을 벗는 사회를 표방했다. 서구 근대주의자들이 산업화 이전의 전통사회와의 단절을 실행했던 것보다 한국에서의 변화 속도는 훨씬 더 빨랐기 때문에, 옛날로부터의 해방은 당연할 뿐 아니라 과거를 처박아 두고 미래를 열망하는 것이 모든 것의 출발선이 되었다. 한국의 독특한 현대성의 시작인 마포주공아파트는 1994년 최초의 재개발 아파트 단지가 되어 신화를 이어갔다. 공간을 생산하는 방식이 유사해지면서 삶의 모습과 형태가 통일되었고, 경제적 지표로 환산되는 ‘집’은 이제 한국인의 세계관과 일상을 지배하는 체제가 되었다. 애초부터 ‘언젠가 헐리고 다시 지어질 것’을 전제로 한 순환적 자산으로서, 여전히 수많은 아파트가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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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벌판을 불도저로 밀어붙인다고 수출 공장이 되겠냐며 의심한 사람도 많았지만, 우리는 결국 해냈습니다.”
구로동의 한국 수출산업공업단지 준공식(1967년)에서 박정희의 축사(祝辭) 중 일부다.3 거의 모든 국가적 성취 서사 안에서 반복되는 ‘안 될 일을 해내는 서사’는 성취 결과물이 삶의 성공을 증명하는 절대적 지표로 작동하게 한 뿌리가 되었다. 한국인이 느끼는 피로감의 상당 부분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증명함과 동시에 그 과정의 고통까지 감내해야 정당함을 인정받는 이중의 압박으로부터 기인한다. 독재정권이 하나의 인격으로서 전달한 메시지는 국가라는 익명의 권위가 말하는 방식을 장착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의 공적 언어는 실제 화자 없이 익명의 이름으로 발화되곤 하는데, 주로 그 발화의 저자와 책임 소재가 흐려지는 방식으로 굳어졌다.
1960-70년대의 경이적인 경제성장률이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었으나, 한국은 근대화의 후발주자임에도 세계적 추세를 웃도는 성공을 거둔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다음 해 경제성장률은 9.2% 뛰어올랐고, 이후 10년 동안 매해 평균 10.2%의 성장을 기록했다. 1969년 4분기 한국의 실질 경제성장률은 19.8%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4 1970년대를 살았던 한국인들은 이전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회 변화와 속도전을 경험했다. 한국이 경험한 고도의 압축 경제성장은 한국 사회만의 독특한 모더니즘으로 변모해갔다. 여기서 ‘압축’의 의미는 단순히 ‘빨랐다’는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성장과 박탈이 동시에, 같은 강도로 일어났다는 ‘구조적 동시성’5을 가리킨다. 즉, 성장한 이후 그 대가로 박탈이 오는 것이 아니라, 성장과 박탈이 같은 사건 안에서 함께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다. 압축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건너뛰었다’라는 뜻이지, ‘모든 것을 다 가지면서 빨리 갔다’라는 의미가 아닌 것이다. 시간을 줄인 만큼 반드시 어딘가에서 다른 것을 빼내야 했던 거래였다. 압축성장이 걸러버린 것들의 청구서가 지금 세대에게 돌아오고 있는 것은 아닐지, 미청산된 채무는 한국 사회 전체를 불안하게 한다.
구로공단은 조성되자마자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1971년 한국 전체 수출액 10억 달러 중 1억 달러를, 1977년 100억 달러 달성 시 11억 달러를 이 좁은 공단 하나에서 만들어냈다. 당시 여공들이 감내한 저임금 노동은 대개 오빠나 남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상경한 어린 여성들로 채워졌다. 국가적 통계의 압축된 속도는 개인의 몸과 시간, 삶과 희망을 압축적으로 소진시킨 대가였다. 1985년 구로동맹파업이 벌어지고 노동자들의 희생이 이어지며, 국가의 ‘성장 쇼케이스’였던 장소에서 성장 논리에 대한 가장 격렬한 반박이 발생했다. 1990년대 이후 저임금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구로공단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간판을 바꿨고, 그 자리에는 패션타운과 테크노타워라는 이름의 아파트형 공장이 즐비해졌다. 그럼에도 제조업 부문이 전체 공단지역 고용의 1/5을 차지할 정도로 아직 제조업은 구로공단 지역에 잔존해 있다. 오래된 것 위에 새것이 얇게 덧발라진 이 미완결의 풍경 속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은 그 위에 또 다른 새것을 덮을 뿐, 그 밑에 묻혀 있는 것은 이제 알아볼 수조차 없이 흐릿하다.
미완의 이상향을 제시하는 이는 누구인가. 한국의 근대화는 곧 경제개발이었고, 산업화는 경제적인 것을 특권화하는 과정으로 고착되었다. 경제가 모든 영역을 압도하면서 ‘잘 살아보자’는 단일한 욕망이 전 사회적 현상이 되었고, 이는 사회 구조를 바꿨을 뿐 아니라 개인의 내면과 일상적 습관까지 재구성했다. 개발독재시기에 일어난 가장 뚜렷한 변화는 근대-자본주의 체계가 우리 내면에 확고하게 뿌리내렸다는 사실이다. 이미 한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그때 새겨진 집단적 경험은 돌이킬 수 없는 출발점이었기에 여전히 긴 성찰의 대상으로 남는다. 과거를 되짚는 일은 그것을 서랍에 넣어 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다.
‘잘살아 보자’는 집단주의적 감성은 ‘삶은 곧 경쟁이자 증명의 연속’이라는 기본 감각을 장착시켰다.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채 물려받은 이 감각은 망탈리테(mentalité)6의 지속이다. 마포주공아파트가 들어선 이후 삶의 질을 숫자와 평수로 환산하는 감각이 하나의 문법이 되었듯, 정권과 정책이 바뀌어도 죽음을 대하는 태도,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 몸과 노동을 바라보는 시선은 몇 세대에 걸쳐 거의 변하지 않은 채 지속된다. 한때 개인은 국가가 정한 방향을 향해 내몰리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 방향, 공동의 이상향이 사라진 자리에서 개인은 스스로를 경영해야 하는 성과주체가 되었다. 이제 명령하는 이는 없지만 경쟁하고 증명해야 한다는 감각만은 그대로 남아, 개인은 자기 자신의 감독관이자 노동자,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된다. 우리는 그렇게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억압하는 ‘자기 착취’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질주의 세대가 성취라는 최소한의 결과라도 손에 쥘 수 있었다면, 지금 세대는 도착점조차 불분명한 안개 속을 달리고 있기에 더욱 가혹하다.
‘희망’이라는 단어는 너무 값싸게 소비되어 오랫동안 응답 없는 메아리로 낡아버렸다.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한 채 반복되는 그 희망에 관해, 발터 벤야민은 파울 클레의 그림 <새로운 천사 Angelus Novus>를 통해 설명한다. 그는 화가 파울 클레가 그린 작은 그림 -눈을 크게 뜨고 정면을 응시하는, 인간과 새가 뒤섞인 듯한 형상의 천사- 을 오래도록 곁에 두고, ‘역사의 천사’라 불렀다. 벤야민의 해석에 따르면, 이 천사는 얼굴을 과거로 향한 채 서 있지만, 그가 바라보는 것은 연속적인 시간이 아니라 잔해 위에 잔해를 계속 쌓아 올려 발밑에 내던지는 단 하나의 파국이다. 천사는 부서진 것들을 이어 붙이고 죽은 자들을 깨우고 싶어 하지만, 낙원으로부터 불어오는 폭풍이 그의 날개에 얽혀, 그가 등지고 있는 미래를 향해 강제로 밀어낸다. 뒤를 보지 않고 질주하는 이들은 낙관의 폭풍에 휩쓸려가고, 애도와 연결의 시간은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는 속도 앞에 매번 끊겨나갔다.7
성취와 박탈의 서사가 번갈아 휩쓸고 지나간 이 풍경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달려왔고 무엇을 잃었는가. 폭풍에 끌려가면서도 끝내 발밑의 잔해와 잃어버린 이름들을 내려다보는 ‘역사의 천사’처럼, 늦게 도착한 위로를 건네고 부서진 기억들을 가만히 보듬는 바로 그 정지의 순간만이 각자의 기억과 질문을 천천히 불러내는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새희망’은 더 가속된 희망의 구호가 아니라 잠시 멈추어 서서 우리가 지나온 길을 가만히 돌아보는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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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창훈 작가의 작품 〈걱정이나 근심이 없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에서 제목을 빌려왔다. 이는 ‘파라다이스’의 사전적 정의이기도 하다.
2. 박철수, 『마포주공아파트 단지 신화의 시작』, 도서출판 마티, 2025, p.35-36
3.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구로공단」
4. 한국은행, 「국민계정」
5. 장경섭, 『압축적 근대성의 논리』, 박홍경 옮김, 문학사상, 2023
6. 망탈리테(mentalité): 정권과 정책이 바뀌어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집단적 사고방식과 감각의 구조
7. 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최성만 옮김, 『발터 벤야민 선집 5』, 도서출판 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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